| 기사등록일 | 2009-05-12 |
|---|---|
| 개제호수 | 225호 |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자, 어버이날에 관한 원고를 모집했습니다.
예상외로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습니다.
또,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사연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부모님을 떠올려보기도 했지요.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독자들과 함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나누고자 합니다.
티셔츠 한 장 조혜철(국제경제통상 06)
돈 70만원이라는 거금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낼 때쯤, 나는 "뭐라도 사서 남겨야겠다"라는 생각에 그동안 벼르고 있던 안경과 렌즈를 맞추러 엄마와 함께 안경점에 갔습니다.
10만원이라는 큰돈이 한 번에 나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지만 안경과 렌즈가 워낙 오래됐던 탓에 큰 맘 먹고 둘 다 구입을 했죠.
그렇게 안경점을 나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맞은편 옷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숙녀복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꽤나 유명한 브랜드였는데, 날씨가 따뜻해지자 팔이 긴 옷들을 세일해서 만원에 판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지갑에는 안경과 렌즈를 사고 딱 만 원이 남아 있었고, 평소 "Be the Reds" 티셔츠만 입는 엄마에게 마침 세일도 하니 한 장 사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엄마를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혹시 몰라 만 원을 남겨둔 것이 뜻하지 않게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깨에 온갖 힘을 주며 말했습니다.
"엄마! 맘에 드는 걸로 골라봐!" 엄마가 선뜻 고르지 못하고 매장 안을 왔다갔다만 하자, 내가 나서서 엄마에게 어울릴만한 옷으로 이것저것 대보았습니다.
그때 점원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면서 말을 건넸죠. ꡒ어머, 그 옷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ꡓ
그 순간, 엄마의 입에서 수줍게 흘러나온 한 마디가 나를 한없이 작고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 아들이 기특하게도 글쎄 힘들게 번 돈으로 엄마 옷을 사주겠다고 하네요"
아,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맞아요, 어쩌면 저는 고작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으로 엄마에게 생색을 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월급을 타면 엄마에게 뭐라도 하나 선물해줘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게 고작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못난 아들일지라도 엄마에게는 누구보다도 착한,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아들이었나 봅니다.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이담에 돈 많이 벌면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 꼭"
그렇게 선물해드린 티셔츠, 엄마는 외출하실 때면 항상 그 옷을 입고 나가신답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큰 감동을 느끼는 우리 엄마, 그리고 아빠. 이제 곧 있으면 어버이날이네요.
이 무심한 아들이 그동안 장난스럽게만 해왔던 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말해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널 사랑할 거란 사실을 아니까 문은지(스페인어중남미 08)
"믿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화를 낼 때가 있는 법이야"
"왜 그렇지?"
"어떤 경우에라도 항상 널 사랑할 거란 사실을 아니까"
내가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바로 부모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 영화에선가 저 대사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엄마, 그리고 아빠였다.
무언가 잘못돼간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고, 주변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문제들을 떠안고서 하루하루를 살다가, 문득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것은 도피였다.
불현듯 내 스무 살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휴학신청을 했고,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을 가지고 나는 유럽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무작정 떠나버린 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해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열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당장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드라마에서 많이 본 대사 중 한 가지가 수화기 너머로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엄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뭐야, 왜 말도 없이 떠나…. 걱정했잖아"
한국에 놓고 온 휴대폰 때문에 이미 내가 한국에 없단 사실을 알고 있었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기는 했는데 실종신고를 해야 할지, 가출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하셨다는 엄마.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좋았을 것을. 조심히 잘 놀다오라는 그 한 마디에 나는 무너져버렸다.
이 세상은 오로지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고, 가족은 필수가 아닌 선택일 뿐이라는 생각에 빠져 살던 그 시점.
이왕 간 것 잘 지내다 오라는 그 한 마디에 난 부모라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그 가슴속을 자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많은 이들이 알기나 할까 생각했다.
당당하게 떠나와 놓고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 것은 내 쪽이었다.
그렇게 나는 유럽에서 3개월을 지내다 왔다.
부모에게 짐이 되기보다 자랑이 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것이다.
새해가 예전만큼 달갑지 않은 것은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내가 짊어진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한텐 마음 편하게 공부해라 말하면서도 자신은 등록금 때문에 등골이 휘고, 생활비 걱정에 머리가 희끗희끗하면서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못해줄 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투정부리고 화를 낸다.
날 언제나 사랑해줄 거란 사실은 알지만, 부모님도 늙어간다는 사실은 자꾸만 잊고 사나 보다.
구겨진 편지로 알게 된 사랑 김유이(경찰행정 06)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 부모님께 애교를 잘 부리는 싹싹한 성격이 아닌지라, 편지를 쓰는 내내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친구들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쓱쓱 잘만 써 내려가는데 왜 저는 한 자, 한 자 적는 것이 그리도 쑥스럽고 어색하던지….
그래도 용기를 내어 그동안 키워주신 것이며,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신 마음에 대해 감사의 편지를 써나갔습니다.
10살이면 선생님 말씀은 뭐든지 믿고 따르는 나이였으니, 선생님이 시킨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나봅니다.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면서 쑥스럽고 어색했던 것도 잊고 있었는데, 며칠 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지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썼던 그 편지가 부모님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편지를 집으로 붙일 거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습니다.
기대로 가득한 표정의 부모님께서 "우리 딸이 엄마 아빠한테 편지를 썼네! 어디 한번 읽어볼까?"라고 하시는 순간, 저는 "이런 걸 뭣하러 읽어!" 하면서 부모님이 들고 계시던 편지를 빼앗아 휴지통에 구겨 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선은 창피하고 쑥스러운 게 더 컸던지라 그대로 친구들이 있는 놀이터로 휙 하고 가버렸습니다. 부모님께 그렇게 행동하고 나온 것이 계속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습니다.
저녁이 돼 집에 들어왔습니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글쎄 부모님께서 낮에 제가 휴지통에 버렸던 구겨진 편지를 찾아와 읽고 계시는 겁니다.
차마 깨어있다고 말할 수 없어 이불속에서 꼼짝 않고 잠이 든 척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누시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우리 딸이 어린 줄만 알았는데 벌써 다 컸네…, 일하느라 신경도 많이 못써줬는데…"
"글 쓰는 솜씨도 제법인데? 작가해도 되겠어!"
저는 그때서야 낮에 부모님께 했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교수업을 이유로 쓴 형식적인 편지였을 수도 있는데, 그조차도 부모님께는 감동이고 행복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13년이 흘러 23살이 된 지금까지도, 저는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버팀목이 돼주시고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전부 사랑해주시는 부모님.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어버이날을 맞아, 이번에는 제 진실한 마음과 사랑을 담아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한번 써볼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