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에게 꿈이란 저 멀리 산등성이 사이로 펼쳐진 무지개와도 같은 것이었다. 형형색색의 무지개 빛깔처럼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내 손에 담을 수  없는 그 무엇. 때때로 나는 악을 물리치는 당차고 예쁜 마법소녀가 되고 싶기도 했고 때때로는 아름다운 성에서 왕자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공주이고 싶기도 했다.

나의 꿈은 나의 상상 속에서 수많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천일동안 이어졌다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내가 꾸던 꿈 역시, 그토록 다채롭고 모험이 가득한 어떤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 꿈은 이 두 손에 없을 뿐 아니라 아름답지도 않다. 매일 매일을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어 내고 있다고 느끼면서,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아프기만 하느냐고 울고, 떼쓰며 나는 그렇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이제 나는 사춘기 소녀의 유치하지만 정열적인 짝 사랑의 열병도 앓을 수 없고 여섯 살짜리 아이처럼 가식 없는 행복한 웃음을 자주 짓지도 못할 만큼  커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내 마음 속 깊은 목소리는 현실에 그냥 그렇게 타협하면서 살아가겠노라고 선언한지 오래였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조차 내 마음 속 작은 악마는, 또 얼마나 자기를 자랑하는 말들로 채워져 있을 까, 결국은 만연해 있는 자신의 편견에 대한  변명으로나 끝맺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랬다. 그만큼 나는 순수하지 않았던 거다.

가끔씩 내게로 전해지던“누가 이랬대, 저랬대.”하는 말들에 불행히도 나는 너무 자주 흔들렸다. 멀리 있는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 마련이고 그런 이야기들은 자주,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엄청난 재미를 동반해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통일교, 문선명’뭐, 이런 단어들에 나는 어쩌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결국엔 이해할 수 없는 종교라는 편견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던 나는, 그래, 어른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씩 화가 났다. 나는 통일교가 얼마나‘가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통일교 친구들은 자주, 혼전순결이나 이혼 같은 사회 문제 때문에  얼마나 이혼한 당사자들이나 그들의 아이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지 말하고는 했다. 또한 가정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는 것이 통일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말했다. 나는 통일교를  모른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가치만은 참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이 교회의 창시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정을 버려둔 채, 선교활동을 떠나는 장면에서 나는 울컥해 버렸던 것이다. 왜 자신이 낳은 아이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다던 부인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것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거창한 목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단지‘보통사람’인 나는 결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종종 친구들이 종교가 무엇이냐 물으면 ‘나 자신교’라고 대답할 만큼의  무신론자이고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 내가 만나는 친구나 가족이 하나님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었더라면 아무리 고생 할 지라도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정’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외치는  지금의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게 하려거든, 자신부터 그런 삶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처절한 삶에 동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정을 버려야 할 만큼의 훨씬 더 깊은  사연과 상처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애써 자신의 결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나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만큼 그를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가정을 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했던 더 큰 가치가 있었다.

나는 그의 꿈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다. 아흔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던 그의 말은, 대단하기 보다는 차라리 슬펐다. 이제껏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살았으면 편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그만한 위치에 있다면 차라리  다음 생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데 아직도 자신이 믿는 가치가 세상에 실현되지 않았기에 세계를 위해서 살겠노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나는 작은 일도 힘이 든다. 학교를 다니며 수업  때문에, 친구들과의 마찰 때문에, 취업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문득, 인간은  고통 받고 힘겨워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의 꿈을 꾸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 중,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프고 슬펐던 기억이 나를 옭아매 어떤 밤에는 나를  잠들 수 없게 한다. 나는 종교  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고문을 받지도 않았고 이제까지 돈 걱정을 심각하게 해 본적도 없고 우리 엄마 아빠를 버려야 할 만큼의 시련도 없었다. 그런데 내 인생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일까.

이 자서전은 여느 자서전이 그렇듯, 이제까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이 나를 대단하게 만들었는지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앞으로  이뤄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아흔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꿈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큰 꿈이다. 누가 감히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이 세상에 평화를 지키는 일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아흔의 나이에 아직도 이제까지 이룬 것보다 더 큰 꿈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그의 꿈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그를 만나본 일조차 없고 그가 원하는 바가 진정으로 세계를 위하는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살아왔다는 것만은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도 와 닿는다.

나는 지금 그의 꿈이 만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며 내 삶의 일부를 채워  나가고 있다.  한국인이 만든 종교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수많은 외국인이 통일교를 믿고 따른다.

이 학교에서 만난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통일교였고, 그들은 모두 나에게 친절했다.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많은 편견들은 나의 친구들로 인해서 많이 깨져 나갔다.

만약, 그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내가 만난 그 친구들도  나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인종도, 종교도 모두 철폐 되어야 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저자의 목소리도 이 학교에 다니고 있노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그 한국어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이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내 친구일 뿐, 더 이상 ‘통일교 신자’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나도 그의 꿈속의  일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만약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뻐겨 대었다면 나는 이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꿈이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 나는 그의 꿈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그의 꿈을 부인하려거든 적어도 그가 자신의 꿈을 다 이루었다고 말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이룬 업적만으로도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니란다. 분명, 그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 그가 이뤄  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자신과  가족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다 해도 그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돈을 낭비할 수도 있고 충분히 호화롭게 살며 편안하게 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쉬지 않는단다. 아니, 쉴 수 없단다.

그가 말하는 세계평화가 오려면 아직도 먼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이 세계 평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지금 나에겐 무엇이 남아 있는가. 불평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이 나는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어 있다. 나는 언제나 핑계를 찾았다. 이 바쁜 시간만 지나면 영어 학원에  다녀야지, 방학이 되면 오지로 여행을 떠나야지, 돈을 많이 벌면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러 다녀야지. 이렇게 ‘무엇 무엇만 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수많은  나의 다짐들은 아직 이루어 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작거나 큰 결심들을 실천에 옮기지 못함으로써 또 한 번 좌절하고 슬퍼하며 꿈을 하나씩 포기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모든 것을 불살라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나만의 가치가 없었다. 나의 결심들을 계속 지탱시켜줄 확고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자라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힘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꿈에 대한 무지함이었다. 인간은 숨이 끊어질 때 죽은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어 버렸을 때 죽은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꿈을 꿀 수 없었기에 희망이  없었고 희망이 없었기에 인생이 힘들었다.

내가 아흔의 나이에 그처럼 해맑게 나의 꿈은 세계 평화’라고 당당히 외칠 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때 쯤 이면 나는 이미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서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구경하거나 어쩌면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 나에게는 작지만 꿈이 생겼다. 물론 그의 꿈처럼 ‘세계  평화’나 ‘해저 터널’같은 거창한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에서, 내게 허락된 이 자리에서 나는 점점 좀 더 큰 꿈을 키워나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보다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주고도 잊어버리는’크디큰 부모와 같은 사랑을 세상 누구에게나, 아니, 이 세상 자체에 퍼부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득,“내가 그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 자신을 건사하는 일만 생각 내가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작은 의문이 내 마음의 소용돌이 같은 샘물 한복판에 던져졌다.

물론 나는 그처럼 종교를 만들만큼의 배짱은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루에 하나씩 작은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이뤄나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지긋한  노인이 되었을 때 젊은이들이 보고“아! 저 사람은 참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 글을 마치면 나는 바로 영어책을 펴고 그동안 미루었던 영어 공부를 시작 할 것이다. 이 저자가 원하는‘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라도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나도‘세계평화’에 0.000001%정도는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얻은 지혜로 내 소중한 꿈들을 이 손에 담고 다시 날아보려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어렸을 적 그렸던 정의로운 마법소녀도 부럽지 않은 내 모습이 되기 위해. 그리고 나눔으로써 행복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