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면-전체학림.gif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94-2번지, 그곳에 학림이 있다. 대학로 길을 따라 무심코 걷다 그냥 지나치기 쉬울 만큼 좁은 입구로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아래 나무 계단이 굽어져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학림과 지난 53년의 시간을 같이한 삐그덕거리는 나무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30여평 남짓한 공간에는 학림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카운터 옆 위쪽 벽면에 걸려있는 베토벤의 두상, 나무 테이블 사이로 놓여진 작은 서재, 카운터 뒤로 빼곡히 꽂혀있는 클래식 LP판들, 오랜 목조식 피아노 등이 학림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누렇게 빛바랜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시대를 풍미한 베토벤, 슈베르트 등 클래식 음악가들의 사진이 담겨있어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학림만의 진한 커피맛을 잊을 수 없어요."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클래식 음악에 마음이 따뜻해져요." "학림은 저에게 타임머신 같은 신기한 장소입니다."

학림을 찾은 손님들은 53년의 역사가 있는 이곳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무심코 지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도, 20년 전 대학시절부터 친구들과의 아지트로 삼았던 단골들도, 한 번 학림에 발을 들이고 자리에 앉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워나간다.

 

▷ 학림의 어제

8면-학림옛날.gif 학림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상업화 된 대학로 거리에서 반세기의 전통을 지켜왔기에 더 특별하다. 강이 있던 곳이 길로 변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곳은 학림뿐이다.

1956년. 학림은 한국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에 대학로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당시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앞에 위치해 학생들에게 '제25강의실'로 불리기도 했다. 학림(學林)은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축제 이름인 '학림제'에서 유래됐다.

학림은 민주화를 위해 학생운동에 발벗고 나선 대학생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19혁명, 5․16혁명을 주도한 대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작전을 짜고 토의했다. 이들은 지난날 학림다방에 앉아 시국을 논하고 서로 소통하며 창작활동을 했다. 그 시절 학림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학생들 가운데는 오늘날 문학계를 좌우하는 인물도 적지 않다. 이청준, 김지하, 황지우, 홍세화, 고 전혜린․천상병 등 한국 문학사의 거목들이 학림의 단골 손님들이었다. 이처럼 학림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앉아 음악과 문학과 사랑을 논하던 젊은이들의 토론공간이자 사랑방이었다.

학림에서는 영화 속 명장면도 탄생했다. 영화 「번지점프를하다」에서 고 이은주가 이병헌에게 창가 자리에 앉아 라이터를 전해줬고, 「챔피언」에서 유오성과 채민서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학림은 외환위기 이후 손님이 줄고, 건너편에 스타벅스 국내 2호점이 들어서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반세기를 이어온 전통과 역사, 그리고 학림에 대한 추억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폐점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 학림이 특별한 이유

8면-학림내부.gif 53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학림은 과거의 명목을 이어 현대와 융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매개체는 바로 학림커피다. 학림의 4대 사장 이충렬 씨(54)는 "학림은 학림답게"를 모토로 "학림만의 커피 맛"을 자부한다. 대형 로스터기를 구입해 학림 뒷골목에 작은 공장을 마련하고 총8개 메뉴를 직접 블렌딩해 신선한 커피를 제공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제는 젊은 층의 입맛과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또 학림에는 아무 곳에서나 듣기 힘든 클래식 음악이 있다. 락, 일렉트로닉, 힙합 등 장르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음악들 사이에서 생산마저 중단된 LP판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학림에서는 1천장이 넘는 클래식 LP음반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듣고 싶은 클래식 음악을 신청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학림이 특별한 것은 아직도 학생과 문인들의 사랑방이다. 과거 다방은 문단의 교류와 소통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특히 학림은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찻집으로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이 곳에서 문인들은 문학적 영감과 삶의 열정을 얻고, 저마다의 독자적인 감정과 사유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학림의 옛 모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곤 한다. 학교를 마치고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온 중고등학생들부터 레포트를 쓰거나 토의를 하는 대학생들, 반짝이는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온 문학도들, 단조로운 일상에 휴식과 낭만을 즐기기 위해 찾은 노부부들까지. 카페보다는 다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곳, 바로 학림이다.

이충렬 사장은 힘주어 말한다. "주변 거리는 모두 변했지만 추억 찾는 손님이 있는 한 학림은 그대로 있습니다. 1백년 카페로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모습이 변하는 사회에서 50년 전 옛 모습과 많은 이들의 추억을 고이 간직한 채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난 학림. 하루 쯤 시간을 내 학림 커피의 진한 역사와 전통의 향기를 맛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카페보다는 다방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 곳에서 1950년대 음악과 문학과 사랑을 논하던 그때 그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은선 기자>

 

찾아가는길 :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 혜화동 로터리방향으로 40M 이남장설렁탕 2층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12시

전화번호 : 02-742-2877

 

---------------------------------------------------------------------------------------------------------------------------

8면-청상병시인-부인.gif 8면-귀천내부.gif 8면-귀천.gif

천상병 시인의 향기가 있는 곳, 귀천

처음 온 사람도 다시 찾게 하는 정겨움과 소박한 향기가 있는 곳. 인사동과 25년을 함께한 귀천은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는 전통찻집이다. 이름은 천상병 시인의 대표 작 제목을 따라 붙였다.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천상병 시인의 작품과 생애가 서려 있다. 천상병 시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단골손님으로 이 곳을 찾는다, 1985년 처음 문을 연 귀천은 인사동 재개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은 적도 있지만, 귀천을 찾는 이가 많아 1년 만에 다른 장소에 다시 보금자리를 틀었다. 기존에 있었던 자리에는 분점이 들어서 있다.

귀천에서는 천상병의 시처럼 소박한 멋과 사람 사는 재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지로 만들어진 빛바랜 벽지, 투박한 나무의자와 탁자, 밝지 않은 조명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모과차 향기는 그의 시와 닮았다. 한 무리의 문학동호회 회원들이 한 쪽 나무 탁자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매년 천상병 시인의 기일마다 생전에 그가 살았던 수락산 입구에 세워진 천상병 공원에서 기념행사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인사동 길에서 수도약국 방향으로 2백M. 해정병원 맞은편.

영업시간 : 오전 11시 ~ 오후 10시. 연중무휴

전화번호 : 02-734-2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