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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서 본 현황

지난 12월 21일 본지 기자는 우리학교 1백25명의 자원봉사단과 함께 태안 기름유출사고 피해지역인 구름포 해수욕장을 찾았다. 사고현장에서 직접 만나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했던 사실보다 더 끔찍했다. 이에 현장에서 본지 기자가 보고 느낀 문제점을 고발한다.

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 스프리트 호 기름 유출사고가 일어난 지 20일이 채 지나지 않아, 각종 매체에서는 벌써부터 사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브라운관을 가득 메우던 검은 영상들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지 오래다. 대선이며 특검 등 큼지막한 정치관련 사건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분위기에 밀려 어느새 관심 밖의 일이 돼버린 것. 하지만 우리가 새해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안은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바다생물들은 죽어가고 주민들은 가슴앓이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응급방제가 끝나는 데만도 3, 4개월은 걸릴 것이며 생태계가 제구실을 하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한다.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피해액은 어업, 관광, 환경부문 약3천9백억원으로 추산된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최소 피해액이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정부 관련부처와 각종 매체들은 밝은 면만 보여주기, 잘잘못가리기에만 급급하다. 긍정적인 면을 통해 희망을 주고 사고경위를 밝혀 재발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속하고 지속가능한 환경대책마련과 주민지원 등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할 때다.

▷ 육ㆍ해ㆍ공 환경오염 심각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많은 환경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유화제로 인한 오염이다. 유화제는 바다에 떠있는 기름을 분해해 잘게 나누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유화제 성분의 안정성과 효과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유화제가 오히려 바다의 자정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했다. 원유를 주입한 뒤 유화제를 넣은 어항과 그렇지 않은 어항의 차이를 비교해보니 보통 어항에서는 60%의 물고기가 살아남은 반면 유화제를 넣은 어항에서는 모두 죽었더라는 실험결과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간 해안은 언뜻 보기에 깨끗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벤젠,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로 알려진 유해물질이 남아있어 사람 뿐 아니라 철새며 바다생물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한다.
서산·태안 환경연합은 “눈에 보이는 기름이 사라지고 자원봉사자들이 떠난 곳으로 새들이 날아와 죽어갈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기름유출사고는 육지의 오염까지 야기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태안일대 주요방제지역에서 매일 1~2톤의 유류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방제작업에 쓰인 흡착포, 방제복과 장화 등도 모두 특수폐기물로 분류된다. 이러한 폐기물들은 일반매립장에 묻지 못하고 특수처리시설을 거쳐야 해 일반쓰레기의 5~6배가량의 처리비용이 들며 다이옥신 등 2차 오염물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고경식 읍장(태안읍)은 “매일 지역별로 수백,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한번 쓰고 버리는 방제복, 장화, 장갑 등이 쓰레기가 되고 있다”며 “봉사하기 전 해당지역에 방제물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재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 주민들 생계지원과 보상 절실
해양수산부는 17일 ‘오염해안을 70%이상 복구했다’고 밝혔다. 정명순(여 41)씨는 “안 그래도 키우던 굴이 다 죽어 속이 상하는디 뉴스에서까지 답답한 소리 허구 있네”라며 대뜸 화를 냈다. 천리포, 만리포 등 일부 지역 외에는 아직도 도움이 절실한데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해서다. 정 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도 했다.
주민들은 일차적으로 사고선박인 허베이 스프리트호가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고, 보험한도를 넘어서면 IOPC펀드(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로부터 피해액을 보상받게 된다. 그러나 이 보상절차란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피해가 기름오염으로 발생했다는 증거, 사고가 나기 전 3년 동안의 월별 수입 세부내역, 사고 이후 벌어들인 월별 수입 세부내역, 사고가 나기 전 3년 동안의 생산물 및 판매량 등의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 어민들은 자기 수입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어도 이를 증명할 길이 없어 답답하다. 어부들은 대개 소비자들과 일대일 직판을 해왔고 갯벌에서 수산물을 채집하거나 굴을 까 일당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이곳 구름포에서 만난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명순 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주생업은 굴 양식. 굴의 수확기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로 겨울에 가장 활발하게 수확이 이뤄진다. 한창 때에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다 지어 논 1년 농사를 망친 격이 됐다. 앞으로 굴 양식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치 않다. 30년 넘게 굴에 기대 살아온 김 할머니(64)는 “가슴이 답답해 바람 쐬러 나가면 바다를 보고는 더 답답해져 돌아온다”며 “반질반질하던 굴이 새카매져서 덜렁덜렁거리는 거 보면 우리 속을 알만도 헌데, 사람들이 그러면 못쓰제”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 자원봉사자들 인식전환 필요
지난달 21일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구름포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힘을 모아 자갈에 붙은 기름때를 일일이 손으로 닦아내고 헌옷을 잘라 기름제거용 걸레를 만들었다. 어느 봉사단체는 다른 봉사자들을 위한 따뜻한 음식을 마련하며 힘을 돋우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처럼 ‘봉사만을 위하여’ 온 것은 아니었다.
구름포 해수욕장 자원봉사활동 지원 안내본부는 연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소득공제용 확인서와 봉사활동확인증을 끊으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충북에서 왔다는 모 주민회는 “나이 드신 분들이 멀리서 차타고 왔는데 배가고파 일을 못하겠다”며 중식배급시간 30분전부터 급식봉사단체를 재촉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일하는 시간보다 집합시간, 인원확인시간 및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태안 기름유출사고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소득공제증명서류와 봉사활동증서가 발급된다. 일부 단체에서는 이러한 혜택이나 ‘태안자원봉사 다녀왔다’는 명분을 위해 이름뿐인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김영철(남 49)씨는 “봉사활동 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11시께나 와가지고는 공짜밥 먹고 ‘증’만 받고 집에 가는 사람이 많다”며 “도움은커녕 챙길 것만 챙기고 폐끼치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옆에서 거들던 박 씨는 “대선기간에 너나할 것 없이 찾아와 ‘항상 국민들을 생각하고 있다’던 사람들은 대선이 끝나고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자원봉사로 이미 절망에 빠진 주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구름포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해온 김희숙 과장(군포제일교회 복지과)은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릴 때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태안으로 향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진실한 마음과 함께 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언아 기자>

 

태안봉사를 다녀와서…
                                                                                          감미선 (일어일본 07)

뉴스에서 서해안 일대가 이번 원유유출사고로 인해 거의 폐허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는 이제 복구가 거의 완료돼가고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번에 봉사활동을 가서 본 태안의 현실은 뉴스와는 달랐다. 봉사지역으로 가기위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아직 바다는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부터 퍼져오는 매캐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한참을 더 들어가자 드디어 바다가 나타났다. 새파란 하늘. 그 아래에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바다 대신 새카만 원유가 삼켜버린, 죽은 바다가 있었다.
우리는 헌옷을 입고 모자 달린 방제복과 마스크, 장화, 목장갑, 그리고 고무장갑까지 끼는 중무장을 하고서야 현장에 투입됐다. 현장에 가보니 왜 이렇게 입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본 모래사장과 자갈들은 온통 까만 원유로 덮여 있었다. 그나마 우리가 파견된 곳은 비교적 많이 닦여져 있는 곳이라는 설명에 또 한번 놀랐다. 안타까운 마음에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외진 곳까지 가게 됐다. 그곳은 단순히 원유가 묻은 정도가 아니라 마치 원유 안에 바위가 있는 것처럼 정말 심각했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 한 분은 닦아도, 닦아도 끝없는 현실에 연신 한숨만 쉬었다. 나는 오늘 하루 작업하는 것뿐이지만 그분들은 매일 이곳에 나와 답답한 마음으로 작업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열심히 일하자’는 마음으로 자갈 하나라도 더 닦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 좀 깨끗해졌나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기름들. 모조리 닦아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저만치에 있던 바다가 어느새 발밑까지 밀려드는 바람에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서 자리를 떠야만 했다.
태안 앞바다를 다시 청정한 생명의 보고로 만들려면 앞으로 몇 년, 아니 몇 십 년 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들도 많은데 몇 달 후면 잘 끝나겠지”하며 막연한 희망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은 아름다운 해변이 검게 물드는 것을 그저 관망하는 일밖에 될 수 없다. 태안의 새파란 하늘아래 푸른 바다를 기억하는 사람들, 태안산 굴과 꽃게를 즐기던 이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만 이런 재난을 이겨내고 태안주민들의 눈물을 거두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검게 물든 태안의 바닷가에서 다시 노오란 모래사장과 건강하게 돌아온 철새며 꽃게들을 볼 수 있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