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충격적이고도 슬픈 일이 일어났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인권 운동가를 거쳐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평생 ꡒ사람 살 맛나는 세상ꡓ을 꿈꾸며 거친 삶과 ꡐ비주류ꡑ를 표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몇 줄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ꡐ노무현스러움ꡑ이라는 그의 결벽증 때문에, 그는 종종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극적인 선택을 해왔다. 1981년 부림사건 변호로 인권운동에 눈을 뜨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것이나, 5공 청문회에선 전임 대통령을 상대로 명패를 집어 던지며 일약 여의도의 스타로 부상한 것이나, 1991년 3당 합당을 야합정치라고 비판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한 것이나, 지방선거와 총선 등 세 차례에 걸쳐 지역주의의 벽이 뻔히 보이는 부산에서 출마할 것을 고집한 것이나, 그의 정치행로는 ꡐ바보 노무현ꡑ이라는 애칭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ꡐ바보ꡑ는 국민들의 누선을 자극했고, 마침내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ꡒ깨끗하고 정직한 도덕성ꡓ을 강조했던 고졸 출신의 서민 대통령은 정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통일을 위해 휴전선을 걸어 넘어간 최초의 대통령이었으며, ꡒ반미 좀 하면 어떠냐?ꡓ며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젊은 검사들과의 생방송 대담에서 그가 내뱉은 ꡒ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ꡓ는 대통령 노무현의 감성적인 직설화법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능력보다 도덕성을 강조한 그도 권력과 부패의 치명적인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퇴임 후 측근과 가족들의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됐으니 말이다. 물론 몇 천억 이상을 챙겨 먹은 놈들도 떵떵거리며 사는데, 겨우 그걸로 죽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전직 대통령보다 비리 규모가 작다는 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며 ꡒ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ꡓ며, 기분 좋아했던 그였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며 사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노무현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업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정당하다. 그는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켰으며, 이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서고자 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어떤 이유로든 미화될 수는 없지만 참담하게 무너져 내린 자신의 도덕성 앞에서 절망했을 ꡐ바보 노무현ꡑ의 모습은 가장 사람 냄새나고 가장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래서 가장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신문과 뉴스를 보고 또 보게 된다. 무언가 새로운 기사가 터질까 궁금해서가 아니다. 단지 믿기지가 않아서이다. 고인은 자신을 버리라고 했지만, 역사는 그를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저 세상에서 당신이 꿈꾸던 살 맛 나는 세상을 맛보시길 기원한다.